자기사랑이 아닌 자기부인과 자기희생.
"Love myself"는 현재 가장 중요한, 이 세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단 하나의 철학처럼 되어가고 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k-pop 그룹의 외침으로 더욱 확증되고 있다.
자기사랑이 부족한 것이 마치 모든 세상 고통의 근원인 것처럼.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서도 똑같이 자기사랑이 최대의 치유책인 것처럼 규정한다.
물론, 이 세대는 자기를 혐오하여 정신질환과 자살 등으로 내몰린다.
그러나 자기혐오는 자기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다.
자기사랑과 자기혐오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기대나 이상에 맞지 않는 결과를 견딜 수 없어 혐오에 빠진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는 자기사랑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왜 성경에서는 "주 여호와 하나님을 맘과 뜻을 다해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두 가지 명령만 주어졌는가? 왜 자기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없는가?
사실, 성경은 이미 "네 몸과 같이"에서 "너는 이미 네 몸을 사랑하고 있다"를 암시한다.
성경에 자기 사랑이라는 구절이 분명 나오지 않느냐고?
그렇다. 사실 단 한 군데에서만 "자기를 사랑"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 1-5)
성경은 이처럼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오히려 말세에 보이는 죄악의 한 가지 종류임을 말하고 있다.
심지어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까지 명령한다.
즉, 제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교만의 죄와 멀지 않다.
그렇다면 자기를 사랑하지 말라는 말인가?
성경은 정확히, 자기에 대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자아는 내가 스스로 사랑하고 돌본다고 해서 더욱 보호받는 것이 아니다.
특히,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없는 자기사랑은 더욱 고립되고 왜곡될 뿐이다.
우리의 자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그와 함께 살아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령이 자아에게 내린 명령이자 가르침이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자아는 끊임없이 주를 거역하고, 죄를 짓기를 기뻐하는 원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나의 자아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에 나를 일치시키며,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말씀처럼,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정도로 사랑해야 한다.
그렇기에 예수께서 보이신 사랑의 궁극적 결과는 자기희생이었던 것이며,
믿음의 선배들이 죽음과 고난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보다 하나님을, 이웃을, 생명 살리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자기를 돌보고 사랑하라는 좁디 좁은 세상 사조에서 벗어나,
그 사랑을 본받아 살아야하는 것이다.
그 사랑이 자신에게 집중하던 시선을 돌려 하나님을, 세상을 바라보고 섬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