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위계질서, 그것이 곧 평화.
권위나 조직의 질서의 문제와, 평등의 문제는 아주 미묘하게 다르다.
자신이 차별을 싫어한다면서, 이미 현존하는 조직 내 질서까지 무시하는 자들은,
실은 자기의 영향력이 약화되거나 자신이 리더 행세를 하지 못하니 "불평등하다"는 말로 호도하는 것이다.
진짜로 평등을 알고 질서를 존중하는 자들은, 그런 얘기조차 꺼내지 않는다.
말하기 좋아하고 주인되기 좋아하는 이들이 보통 그런 식으로 불평을 내뿜어 조직을 흐린다.
또는 마치 영적인 위계질서가 없는 것처럼, 구원받은 자가 똑같다는 점만 강조한다면 곧 왜곡된 복음 자체다.
물론 인간이 모두 평등하듯 구원받은 자는 모두 동등하지만, 구원이라는 선물 이후에 성화의 과정이 있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본인 의지가 아니지만,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개인의 구원부터 성화까지 절대적인 시간 차도 있지만,
주께 순종하는 열심에 따라 먼저된 자가 나중될 수도, 나중된 자가 먼저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반드시, 신앙이 성숙한 자와 미숙한 자, 다시말해 어른의 신앙(고기를 먹을 수 있는)과 아이의 신앙(젖 밖에 먹지 못하는)이 나뉜다. 주께서 이러한 질서 자체를 폐기하신 적이 없다.
강한 자는 연약한 자가 채소만 먹음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소자를 넘어지게 하면 연잣돌을 메고 스스로 빠지는 게 낫다고까지 하셨다.
만일 주께서 나를 일찍 만나주셨고, 은혜로 믿음의 훈련들을 거쳤으며, 따라서 현재 나에게 있는 성령의 열매들이 있다면, 기꺼이 이를 공동체를 위해 섬기고 사랑하는 데에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언행은 내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공동체에 파급을 미친다.
그것이 회피하고 싶어도 주께서 세운 영적 원리이며 질서이다.
이를 인정하고 항상 인지하며,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주를 바라며 일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주님 나라를 이뤄갈 때에
나를 통해 주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시며, 사람을 일깨우시고 변화시켜 가신다.
이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잊어버리며 내팽개친다면,
주께서는 분노하시고, 맡겨진 몫에 대해 불성실한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다.
바울이 고백했듯, 부득불 자신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거라고 했다.
마땅히 해야하며, 기쁨으로 할 믿음의 몫이다.
회피하지 말고 항상 직면할 때에, 주께서 더욱 나를 성장토록 이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