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 애스터로이드시티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그 의미를 질문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있고, 그냥 살아가는 자들도 있다.
의미를 찾는 자들은 종교와 과학으로 그 뜻을 파헤치고자 하며, 과학이 종교를 대체한 현대사회에서는 과학 영재와 같은 머리좋은 석학들이 그 답을 계속 파헤치지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내가 사는 세상 밖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이나 운석 같은 존재들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영화 속 연극에서, 인간 역할의 연기자들 뿐 아니라 외계인까지도 짜여진 극본 안에서 연기하는 존재다.
즉, 사실 세계는 하나의 무대이며,세계와 세계 밖의 존재까지 연출하고 감독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
우리 또한 삶 속에서, 스스로를 마치 특정 역할을 연기하는 연기자(혹은, 페르소나)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우리는, 삶을 지휘하는 과학원리가, 신이, 또는 이념이 존재한다고 믿거나, 믿지 않는다.
그러한 삶 밖의 지휘자를 대리 대표하는, 영화 속 연극의 감독과 연출자는, 성별을 넘어 사랑하기도 이혼하기도 하는, 나와 똑같이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인생에서 가끔 예기치 않은 사건을 마주하고, 절망할 때,
주인공처럼 무대 밖을 뛰쳐 나와서, 내 삶과 세상을 지휘하는 존재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다.
'이 연극의 의미를 모르겠어요. 내 삶의 의미를 모르겠어요.'
아직 무엇도 믿지 못하는 자는 삶의 의미를 묻고 싶어도 답답하고 괴로워하겠지만, 앤더슨은 영화를 통해 그런 자까지도 다 끌어안고 이렇게 위로한다.
'괜찮아, 너는 지금 잘하고 있어. 의미를 몰라도 돼.'
종교도 과학도 국가도 명확한 답을 줄 수 없는 팬데믹의 연속과,
세계가 흔들리는 기후위기 속에서 절망과 혼란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건조하고 메마른 사막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감독은 넌지시 위로를 건넨다.
You can't wake up if you don't fall asleep.
때로 잠자도, 쉬어도 괜찮아.
때가 되면 다시 일어날 거고,
잠을 자야 일어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