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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자녀가 잘못하여 용서를 구하라고 요구하였는데 눈물을 흘리며 “왜 나만 나쁜 사람이야”라고 반응하여 당황한 적이 있다. 복음을 확실하게 모르는 사람이 흔히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죄를 고백하는 것이 자신이 굉장히 나쁜 사람으로 비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의 고백은 자신을 괴롭히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 참된 복음을 아는 사람은 “내가 주께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고백이 가장 복된 고백이라는 것을 안다. 그 이유는 그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이 충만하게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다.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가 그의 위대한 저작 「신학대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 복된 죄여(felix culpa)! 너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대한 구세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도다!”
죄(罪)라는 것이 복될 리는 없다. 죄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에게도 평생 따라다니는 양심의 가시요 내면의 고민이다. 그러나 그 죄로 인하여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에 '오 복된 죄여!'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가장 주된 임무는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사실이다.
우리가 자신의 죄를 있는 그대로 직면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스스로 신이라고 생각해 왔던 환상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죄를 짓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죄라고 느껴지기보다 오히려 성취감과 만족감이 든다. 마치 에덴에서 유혹하는 목소리가 “너는 죽지 않으리라..너희는 신들같이 되리라”(창 3:4-5)고 했던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죄를 자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새를 탐구하듯이 죄를 탐구하고 자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죄를 발견하는 만큼 변화와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의 명령은 경고나 위협이 아니라 정직한 삶으로 안내하는 격려이며, ‘치료의 광선’의 발하는 ‘의로운 해’(말 4:2)가 있는 곳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참으로 펠릭스 쿨파(felix culpa)인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나 어거스틴 이전에 이미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이와 비슷한 고백을 하였다.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16, 20)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조건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존재이며 구원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고 통치를 받는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가장 큰 복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오, 복된 죄여(felix culpa)!너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대한 구세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도다!”
펠릭스 쿨파(felix culpa) - 성산침례교회
얼마 전 한 자녀가 잘못하여 용서를 구하라고 요구하였는데 눈물을 흘리며 “왜 나만 나쁜 사람이야”라고 반응하여 당황한 적이 있다. 복음을 확실하게 모르는 사람이 흔히 오해하는 것 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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