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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은 화를 낸다. 이 분노는 가능한 한 빨리 표현되고 해결될수록 더 좋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화가 났으면서도 심지어 그들이 쓰라림과 분노로 속이 끓어오르는데도 화가 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기 감정을 부인하는 것은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다.

(중략)

존스 부인은 우울증에 중독되었다. 마치 알코올 중독자나 강박적인 과식자가 억압된 분노를 인정하는 대신 우울증으로 위장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강박적인 행동을 사용하는 것처럼, 그녀는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 종교를 이용했다.

존스 부인은 퇴직금의 상당 부분을 교회에 보냈는데, 그것은 최고급 음향 시스템을 구입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녀는 그 교회의 월세를 지불하는 것을 도와달라는 목사의 권면 때문에 그녀의 돈을 헌금했던 것이다. 그녀가 그 돈이 그렇게 사용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분노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상황을 단지 또 하나의 잘못된 결정으로 보았다. 그녀는 '하나님이 그를 판단하실 것이다.'하고 스스로를 합리화하였다. 마치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그녀는 몇 번이고 이용되어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를 이용했던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존스 부인은 더욱 우울하고, 쓰리고, 분노하게 되었다.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녀가 어린 시절에 배운 교훈이었다. 권위를 오용하고, 남용하는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전혀 배우지 못했다.

그녀를 이용하거나 학대하는 사람이 교회이든, 아이들이든, 친구이든, 혹은 가족들이든, 그녀는 그들에게 직면하거나 어떤 경계선을 형성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손에 맡겼다." 그녀가 실제로 하고 있었던 것은 그녀의 분노를 건강한 방식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고, 경계선을 정하지 못하고,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하나님이 책임지시도록 떠넘기는 것이었다.

그녀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스스로 경계선을 정하고 유지해야만 하는 일을 회피하도록 부추겼다. 그녀는 모든 핍박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 분노에 대한 건강한 감각이 없다면, 그녀는 자기 주장을 할 수도 없고 침해당하는 것으로부터 그녀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녀가 분노할 수 없다면, 그녀는 때때로 매우 불안전한 세계에서 그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존스 부인이 화를 냈다면, 그녀는 하나님의 분노하는 자녀들과 연결된 해로운 수치심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했을 것이다. 그녀의 수치심은 분노와 병적으로 묶여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화를 내면 용납될 수 없는 수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배웠다. 현실에 기초하지 않은 이러한 연결은 하나님과, 그녀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를 일으킨다.

존스 부인의 해로운 신앙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녀의 종교 중독은 그녀에게 단지 하나님과의 비현실적인 관계를 맺게 한다. 그녀의 종교적 신은 그녀에게 고통스러운 순교자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잘못된 의식을 제공한다..

(아터번, 122-123)

 

 

감정 중독자들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수용하고 해결하기보다는 삶 가운데 견딜만하게 해주는 감정들, 즉 해로운 신앙을 가진 가족이 견뎌내기에 좀 더 수월해 보이는 익숙한 감정들에 중독이 된다. 용납되기 위해서 중독자들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전혀 배우지 못했던 것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망상의 세계를 찾거나 창조해야만 한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용납될 수 없다는 수치감을 숨기거나 없앨 수 있다.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의존했던 겉치레와 감정들에 중독되었다.

 


밴은 그가 항상 원했던 인정을 교회에서 받았지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는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구와 더욱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밴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가르치는 능력을 평가할 때 맛보는 유쾌한 기분을 즐겼다. 그러나 밴은 스스로 자존감을 가지거나 하나님께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낄 수 없었다. 그는 그가 누구인가보다는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평가하였고 평가받았다. 밴이 알았던 모든 자신의 존재보다는 자신의 능력으로 가치를 평가하였고 또 평가를 받았다. 오직 밴은 좋은 평가를 받는 기쁨을 경험하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거기에 그는 중독되었다. (131)

밴은 자기가 종교를 기분 전환용으로 혹은 행동을 정당화하는 약물로 얼마나 사용해왔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행동이 그의 아버지와 얼마나 비슷한지 확인하였다. 밴은 그가 알코올 대신에 종교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만큼이나 무감각하고, 무시하고, 학대하고, 무책임하였다. (132-133)

종교 중독자는 중독을 지지해주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얽매이게 된다. 중독자는 의식들과 이러한 의식들을 경험한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한다. 종교생활과 구성원들에 대한 의존은 하나님에 대한 의존의 필요성을 제거한다. 그런 신봉자는 그를 놓아주지 않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용품에 중독된다. 종교와 그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중독자에게 중심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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